직장인, 미국대학원 도전기 (2)
영혼을 갈아 넣은 SOP
서류를 준비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 것은 SOP다. 지원 당시에 나는 학부를 졸업한지 얼마 안 되었다고 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직장 경력이 충분하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상태였다. 더군다나 연구경력은 모자란 걸 넘어 아예 없었고 석사학위도 없는 상태로 박사학위에 지원했기 때문에 sop를 얼마나 잘 쓰느냐가 당락을 결정한다고 믿었다. SOP는 내가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박사과정에 굳이굳이 가야하는 이유와 갑자기 연구에 관심을 갖게된 계기 등등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고 이 종이 한 장으로 그들을 납득시켜야했다. 말 그대로 영혼을 갈아넣어 레쥬메가 설명해주지 않는 나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운이 좋게도 나는 토플이 면제였고, 추천서를 써주신다고 약속해주신 교수님들도 본인들이 제때 알아서 추천서를 써주셨기 때문에 여러 교수님께 부탁할 필요도, 대타를 구해야 할 필요도 없었다. 직장도 외국계 기업이었기 때문에 취준 시절부터 레쥬메는 항상 up-to-date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GRE와 SOP말고는 딱히 준비할 게 없었다. 이것저것 준비하고 발로 뛰어다니는 다른 유학준비생들을 보며 나는 참 매우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GRE를 8월에 딱 한 번 시험으로 끝내고 바로 직후부터 SOP 가닥을 잡기 시작했다. 대학원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연구 주제에 대한 큰 틀이 있고 세부적으로 그를 뒷받침해줄 경력도 있을 것인데, 나는 연구 경험 부족으로 내가 관심있는 분야를 도대체 어느 정도 깊이로 알고 주제를 잡아야하는지 몰라서 꽤 헤맸다. 지금 생각해보면, 명확한 주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SOP 쓰는 건 어렵다.
아무튼간에,
- 내가 하고자 하는 연구가 무엇이고 왜 하고자 하는지
- 그를 위해 지금까지 어떤 노력(=연구)를 해왔고 성과는 무엇이었는지
- 왜 이 학교여야 하는지? (= 나의 연구분야와 지원하는 학교/교수/리서치랩이 얼마나 연관성이 있는지)
요 정도의 내용을 최대한 명확하게 담고자 노력했다. 내 분야는 실무에서의 성과도 높게 쳐주는 편이라 내가 가진 작은 실무 경력을 그럴싸하게 포장해 연구경력처럼 보이거나 또는 그에 준하는 수준으로 보이도록 하는 게 내 의도였다. 그래서 회사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를 마치 연구 경력인 것 처럼 풀어냈다. 그리고 일부러 추천서 3개 중 1개를 상사에게 부탁해 내가 했던 프로젝트를 마치 유사 research experience인 것 처럼 서술해달라고 부탁드렸다.추천서에 실제로 어떻게 서술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종적으로 아래와 같은 구조로 초안을 완성했다.
- 1문단 : Hook. 문제 제기 및 문제에 관심갖게 된 배경 서술. 내가 생각하는 솔루션 제안
- 2문단 : 큰 목표와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해온 경력 서술
- 3문단 : 회사에서 했던 관련 프로젝트 경력
- 4문단 : 박사과정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것
- 5문단(커스텀 문단) : 4문단 내용 달성을 위해 이 학교에 진학해야하는 이유. 교수 또는 랩 언급
- 6문단 : 정리 및 마무리
이후에는 몇 번의 첨삭과 수정을 거쳐 탈고를 했다. SOP를 쓰는 과정에서 샘플을 찾아보고 합격자들의 후기를 보고, 다른 사람들의 글을 피어리뷰하다보면 내 경력이 보잘 것 없어 보이기 마련이다. 그들이 논문쓰고 석사받고 할 동안 나는 뭐했는가 싶고 나같은 사람은 뽑아주지 않겠지 싶다. 하지만 나는 결국 미국에 오게 되었다. 나대로 걸어온 길이 있으니 그걸 믿고 뚝심있게 계속 나아간다면 어느 한 곳에서는 받아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준비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