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말정산

여름방학을 잘 보내자고 했던 다짐이 무색하게도, 5월도 그렇게 잘 보내지 못했다. 4월부터 이어졌던 무기력증에 집에 있는 시간이 더 길어지니 도무지 회복이 안됐다. 극복하고자 집 근처 도서관에도 가보고, 시간을 정해놓고 할 일을 무조건 끝내려고도 해보고 다양한 시도를 했다. 다행히도 작은 노력들이 쌓여 무기력에서 탈출해 활기찬 6월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5월을 보내는 것 자체는 힘들었다. 차라리 학기 중에는 억지로라도 해야할 일이 쌓여있었지만 방학에는 온전히 내가 계획한 대로 살아야하니 집중력이 무너지면 모든 게 밀리고 무너졌다. 인스타에 하루의 기록들을 남기고 있는데 업로드도 점점 불규칙해졌다.

5월 초에는 기다렸던 마지막 인턴 결과를 통보받았다. 진행이 무척이나 빨랐던 곳이라 마지막 면접 결과가 2주 넘게 오지 않는 것에 어느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실망감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 때문에 5월을 보내는 게 더 힘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4월, 5월동안 열심히 준비하고 면접에 임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파악하고 다음을 위해 더 잘 다듬을 수 있는 발판으로 삼을 면접 경험을 쌓았다.

4월에 데려온 화분 2개는 모두 죽었다. 역시 나는 식물을 키우는 데에는 젬병이다. 두 화분 모두 야생화 씨앗이었는데, (시키는대로)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두고 하루 한 번 물을 줬다. 결과적으로 한 개의 화분에서는 아예 싹이 트지 않았고, 다른 하나는 3개의 각기 다른 싹이 텄지만 힘 없이 축 늘어져 있더니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 야심차게 데려온 화분의 운명은 그렇게 끝나버렸다. 남들은 가만 놔둬도 잘 자란다는데 나는 왜 식물을 이렇게 못 키우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이룬 것이 있다면 (온라인이지만) 세미나에 2번 참석했고 미뤄뒀던 이력서와 포트폴리오 수정을 끝냈다. 책상에 앉아 내 공부를 하는 건 힘들었는데 세미나는 편안하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크게 부담도 없어서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는 데 도움이 됐다. 연구에 대한 생각도 끄적여보고 내년 인턴을 지원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둘 이론 공부도 계획을 세웠다. 여름학기 TA일도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크게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는 난이도라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지는 않다.

비록 연구와 공부에는 집중을 잘 못했지만 그 대신 5월 중반이 지나면서부터는 책을 꽤 많이 읽었다. 그래서인지 월초보다 시간을 허비했다는 죄책감은 덜하다. 책이라도 읽으면서 무언가에 몰입하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갔다. 자연히 다른 것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기고 기분전환도 됐다.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큰 원동력이었던 듯 싶다.
한 달을 흘려보냈음에도 아직 방학이 3달 가량 남았다. 남은 3개월동안 원래의 생활패턴을 잘 유지해서 계획한 바를 이뤄내고 결과로 말할 수 있는 방학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