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박사

어제는 이번학기 첫 랩미팅을 했다. 지도교수님 밑에 10명 남짓의 학생이 있는데 고작 4명이 나타났다. 그런데도 교수님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오히려 올 수 있는 사람만 오라는 식이다. 드문드문 랩 미팅을 나오라는 메일을 받고 갈때마다 적응이 되지 않는다. 나도 어디가서 개인주의로 빠지진 않는데(?) 투머치 개인플레이가 매번 적응이 안된다. 교수님도 그렇고 랩메이트들은 work from home을 선호해서 실제로 만날 일이 별로 없다.

이럴 때마다 우리 랩이 다른 랩과 조금 다르다는걸 느낀다. 다른 코호트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특히나 비교가 된다. 다른 랩들은 대체로 교수가 프로젝트를 리드한다. 입학 후 탐색 기간을 거쳐 랩에서 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조인하는 방식으로 지도교수를 결정하기에, 대체로 그 랩에 있는 여러 프로젝트 중 하나에 참여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논문 주제를 선택한다. 당연히 포닥이나 시니어들과 함께 일하고 여러명이 함께 쓰는 논문에 참여한다. 코호트들이 교수님 푸시와 랩미팅에 시달리는 얘기를 주로 듣는다.

그것과 다르게, 우리 랩은 교수님이 잘하는 기술을 쓰는 방향으로 가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각자 하고 싶은 연구를 한다. 그래서 모두 하고 있는 연구가 다르다. 큰 도메인 안에서 주제를 고르고 방향을 결정하고 하다가 바꾸고 그런거에 교수님이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랩 학생들 여럿이 함께 참여하는 공저자 논문도 거의 없다. 다른 사람과 같이하려면 자신의 프로젝트는 자신이 리드해야한다. 그래도 웬만하면 혼자하라는 식이다.

그래서인지 논문실적으로 별로 푸시하지 않는다. 논문 많이 내면 좋지만 한개 쓰고 졸업한 학생들도 있으니 논문갯수에 집착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스탠스다. 다른 박사생들이 ‘자기 친구가 뫄뫄교수밑에 있는데 걔네는 논문푸시당해서 힘들어하더라'는 얘기를 교수앞에서 한다. 교수님은 또 ‘ㅇㅇ 거기 좀 그렇더라. 걔네 논문 많이냄ㅋㅋ’ 이러고 있다. 떠미는 사람이 없으니 뒤쳐지면 온전히 내 책임이다. 졸업까지 최소 몇개의 논문은 내야한다는 카더라에 흔들리고 제대로 가고 있지 못하는 것 같아 조급해지기 쉽다.

그러니 랩미팅은 각자 하는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정도의 목적만 갖는거다. 도움이 필요한 부분은 서로 돕는다. 교수님에게 주된 내용을 리포트하고 조언을 얻지만 디테일한 부분은 따로 상의한다.

뭐 어쨌든 이러나저러나 논문이 안나오는 곳은 뭘해도 안나오고 잘나오는 곳은 뭘해도 잘나오니 나의 성향과는 꽤 잘 맞는 것 같다. 서로 교류가 좀 적은건 아쉽지만 말이다.

교수님이 바쁘다는 핑계로 내 논문을 읽지 않는건 내 연구가 그에게 우선순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교수들은 항상 세상에서 제일 바쁜 척을 하지만 그들보다 훨씬 바쁜 사람들이 널리고 널렸다. 단지 내껄 먼저 당겨서 봐줄만큼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교수님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내 우선순위를 높이려면 내가 열심히 잘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스스로 지나치게 달달 볶지 않기. 오래걸려도 제대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