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tv 우린 폭망했다(WeCrashed) 리뷰
유니콘 스타트업의 오너리스크
지난 3월 애플 TV에서 공개된 ‘우린 폭망했다(WeCrashed)' 는 위워크의 흥망성쇠 실화를 담았다. 평소 스타트업 생태계에 관심을 두고 있었기에 8부작 내내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작품인데, 아직 존재하고 있는 실제 회사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실존 인물들을 등장인물로 해 위워크의 역사를 그대로 다룬다는 점이 흥미롭다. 창업주 애덤 뉴먼과 그의 부인 레베카 뉴먼이 버젓이 살아있는데 그들이 어떻게 위워크를 위기로 몰아갔는지를 묘사하는 작품을 만든 게 참 대단하다. 우리나라라면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데 말이다.
WeWork?
위워크는 뉴욕에서 시작된 공유오피스 스타트업이다. 애덤 뉴먼과 미겔 맥켈비가 공동 창립했다. 공유오피스를 모델로 하는 다른 회사들과의 차별점으로 커뮤니티 형성을 내세워 급성장한다. 한국에는 2016년에 진출했다. 무리한 확장으로 자금난에 시달리던 중 손정의 회장이 개입하면서 소프트뱅크의 투자를 받았다. 한때 기업가치가 470억 달러로 평가되고 유니콘 기업으로 불렸지만, IPO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부실 경영의 실체가 드러나 기업가치가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고 기업공개를 포기한다.
드라마는 8회에 걸쳐 위워크의 탄생과 뉴먼 부부의 만남, 위워크를 어떤 식으로 운영해왔고 한 때 기업가치가 천정부지로 치솟던 위워크가 어떻게 한순간에 몰락할뻔했는지, 그리고 그 모든 문제의 중심에 있던 뉴먼 부부를 조명한다. 애덤은 결국 위워크의 CEO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지만 그 과정 역시 많은 논란거리가 되었다. 오너리크스가 회사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대단한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위워크는 기본적으로 부동산 회사다. 대체 왜 sublease(재임대)를 하는 부동산 회사가 이렇게 크게 포장되어 어마어마한 가치로 평가받는지 당시에도 의문이 들었었는데, ‘우린 폭망했다'에서 비치는 애덤의 모습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애덤은 시종일관 당당하다. 그러나 어떤 허상에 젖어있는 사람처럼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빠르게'와 ‘가장 많이’, ‘최고'를 외치며 밀어붙인다.
Spend to grow, 사기의 경계에 선 위워크의 창업주
‘Spend to grow(성장을 위해서는 투자해야 한다)‘가 애덤이 극 중 가장 많이 하는 대사가 아닐까 싶다. 사업확장을 만류하는 동료들과 이사회에 당당히 외치며 빨리 진행할 것을 재촉한다. 공동창업자인 미겔마저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밝히지 못하고 애덤에게 하염없이 끌려다닌다. N 번째 도시, N 번째 오픈, N 면적, 점유율 N % 등등 숫자에 집착하며 과도하게 성장을 추구한다. 자신의 사업에 대한 확신이 있고 정말 성장 가능성을 믿어서라기보단 눈앞에 보이는 타이틀과 성과, 돈만을 좇는 행태를 보인다. 그러면서도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친다. 자의식 과잉이 아닐까 싶은 정도. 이 와중에 사촌인 귀네스 팰트로와 잘 나가는 CEO 남편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점철된 레베카도 계속해서 일을 벌이며 자신의 야심을 채운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볼 때 두 사람이 마치 그들만의 세계에 갇혀버린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들은 초과근무에 시달리는 직원들의 고충과 회사의 어려움, 지속가능성에는 관심이 없고 막무가내식으로 무리한 확장을 이어가며 회사를 운영한다. 얼마나 심각한 정도냐면 부동산업에 불과한 위워크를 테크 회사처럼 보이기 위해 기술에 대한 이해와 깊은 고민 없이 무작정 엔지니어들을 고용하라고 지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지금 당장 자금난에 시달려도 파티를 즐기고 사치스러운 소비를 계속한다. 기업공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단 한 순간도 진지하지 못하다. 그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자신에게 충성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 상당히 매력적인 창업주의 모습으로 사기꾼의 경계를 위험하게 넘나든다. 마치 사이비 교주 같은 모습도 얼핏 보인다. 그가 자랑하듯 떠벌린 잘 포장된 비전은 엄청난 금액의 투자를 끌어냈다. 물론 드라마의 극적 효과를 위해 과장된 부분들이 많겠지만, 올바른 리더십의 부재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지 보여준다. 수많은 직원과 투자자들은 모두 뉴먼에게 사기를 당한 걸까?
존재 자체가 리스크, 창업자의 도덕적 해이
드라마 내내 애덤 뉴먼과 레베카 뉴먼은 꾸준하게 부도덕한 행태를 보여준다. 회사의 실태에는 관심이 없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은 그 자리에서 해고를 서슴지 않는다. 직원들이 적은 월급으로 밤낮없이 일해도 그저 파티와 술을 제공해 사기를 증진하면 다라는 식으로 굴면서 투자금은 자기 주머니로 쏙 들어간다. ‘We'라는 브랜드네임을 싼값에 인수하고 위워크를 ‘WeCompany'로 사명 변경 후 저작권료를 챙긴다. 진정 비즈니스 용도로 구입한 게 맞는지 의심스러운 전용기를 타고 다니며 마약 파티를 벌이고 호화스러운 휴가를 즐긴다. 자신의 의결권을 높게 설정해 영향력을 과도하게 행사한다. 말미에는 자신의 건물에 위워크 사무실을 임대해 임대수익을 챙겼으며 이사회에 의해 CEO 자리에서 내려올 때도 어마어마한 금액의 퇴직금을 챙기는 모습까지 나온다. 직원들은 무엇하나 얻은 것이 없는데 애덤은 1조 원대 부동산 부자가 되었다. 부인 레베카는 써머캠프에서 부적절한 발언을 하기도하고, 적절한 인재를 밀어내고 회사의 고위직을 맡다가 나중에는 위 컴퍼니가 세운 학교 위 그로우의 대표를 맡는다. 공동창업자인 미겔보다도 사내 영향력이 커진다. 이 모든 것들은 IPO 준비 과정에서 제출한 S-1을 통해 세상에 공개된다. 무너진 기업가치와 경영난으로 수천 명의 직원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다. 스타트업이 성장하고 살아남기 위한 과정에 많은 우여곡절이 반드시 있겠지만, 하나의 스타트업이 경영에 관심 없는 부도덕한 오너에 의해 무너지는 일이 비단 위워크만의 일은 아닐 수도 있다. 위워크가 보여준 오너리스크는 다른 기업들에도 위기의식을 심어주는 본보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신이 되고 싶었던 걸까? 애덤과 레베카는 어떤 세계를 그렸던 걸까? 애플 TV 특유의 분위기로 담백하게 담았지만, 작품이 주는 여운은 길다. 스타트업 생태계에 관심이 있거나 실제 속해있는 사람이라면 정주행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