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중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
나의 데스크테리어
구독 중인 어느 뉴스레터에서 재미있는 컨텐츠를 소개한 적이 있다. 바로 구독자들이 자신의 책상을 소개하고, 그 공간이 갖는 의미에 대해 나누는 것이다. 선택된 사진들은 그 주의 뉴스레터 한 구석을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다. 학생이나 회사원들에게 책상, ‘내 자리'는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인데, 각자의 개성이 담긴 ‘데스크테리어’ 포스트들을 구경하다보니 나도 내 책상을 소개하고 싶어졌다.
책상 사진들은 아주 다양한 유형의 인간상을 보여준다. 누군가는 회사 책상 따위는 별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거나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의 책상은 그야말로 깨-끗한 상태다.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노트나 필기도구 같은 최소한의 물품만 올려져있거나 그마저도 없이 모니터와 키보드, 마우스만 달랑 있다. 반면에,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가져다 두는 사람들도 있다. 무언가 필요할 때 이런 사람들에게 물으면 100% 빌릴 수 있다. 복잡하고 정돈돼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각자만의 방식으로 정리된 복잡하고도 질서정연한 공간이다. 여기에서 조금 더 진화(?)된 타입이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들을 추가한다. 예를 들면, 책상에 작은 화분을 두어개 올려두고 지극정성으로 돌보거나 각종 화장품과 거울로 책상 위 작은 화장대를 꾸미기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캐릭터 굿즈가 가득한 책상도 있다.
직장을 다닐 때 내 책상은 미니멀리스트 유형이었다. 가지고 다니는 랩탑과 모니터, 마우스에 연필꽂이 하나가 전부였다. 평소 생활에서는 맥시멀리스트가 따로 없는데 이상하게도 회사 책상에는 뭘 두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면서도 퇴사할 때 내 자리를 정리하면서는 뭉클할 정도로 정들어 있었지.
대학원에 온 후로는 아직 내 연구실이 따로 없다. 집에서 주로 공부하거나 일을 하는데, 책상은 집에서도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이 되었다. 우리집에는 책상이 2개다. 처음에는 ㄱ자로 배치해 넓게 사용하려고 2개를 샀는데 (ㄱ형 책상을 사지 않은 이유는 공간활용도 때문이다.) 지금은 각기 다른 위치에 분리해서 사용중이다.
이 책상은 내가 메인으로 사용하는 컴퓨터 책상이다. 모니터와 랩탑을 연결해두고 마우스를 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데스크매트를 깔았다. 아이패드를 동시에 볼 때 두는 아이패드 거치대도 있다. 키보드 더러워지지 말라고 씌워둔 비밀은 못 본 척 해주면 고맙겠다 하하. 모니터 앞에 공간을 충분히 두는 걸 좋아해서 더 넓은 책상을 사고 싶었는데, 일반 책상 중에서는 내가 원하는 가격대로 넓은 오피스 책상을 찾기가 어려웠다. 책상을 2개 사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모니터 왼쪽으로는 원래 모니터 받침으로 쓰려다 생각보다 높아서 불필요해진 받침대를 두어 수납공간을 확보했다. 받침대 아래에는 자주 쓰진 않지만 필요한 메모지나 스테이플러 같은 간단한 문구용품과 안경닦이, usb같이 꼭 필요한 물건들이 있다. 받침대 위에는 필통과 역시 집게같은 문구용품이 담긴 통을 둔다. 손목보호대와 파스같은 컴퓨터를 장시간 사용할 때 꼭 쓰는 물건들도 함께 두었다. 의자 높이를 모니터 높이에 맞추면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아서 책상 아래에는 발 받침대도 두고 있다. 랩탑 뒤쪽으로 있는 스탠드는 한국에서 라식수술을 하고 눈에 자극이 덜 하다고 선물 받은거라 미국까지 꾸역꾸역 싸들고 왔다. 책상이 방 구석에 있어서 저녁엔 어두운 편인데 꾸역꾸역 싸들고 온 보람이 있을만큼 잘 쓰고 있다. 모니터와 받침대 아래쪽으로는 꼭 필요한 메모들을 붙여둔다. 컴퓨터를 켤 때마다 잊지말고 해야할 것들을 적어둔 메모다. 나름 깔끔하게 쓴다고 생각했는데 사진으로 보니 조금 지저분해 보여서 부끄럽다.
두번째 책상은 원래 메인 책상 옆에 붙여서 사용했었다. 그러다가 집중이 힘들 때 옆에 전자기기가 있는게 너무 신경이 쓰여서 아예 멀리멀리 책상을 옮겨버렸다. 가끔은 침실로 옮겨서 보조책상 겸 테이블로 쓰거나 누워서 영화를 볼 때 유용하다. 지금은 쇼파 옆에 두고 밥을 먹거나 논문을 집중해서 읽어야할 때, 다이어리 쓰기나 노트정리 등 넓은 공간이 필요할 때 주로 사용한다. 줌으로 리모트시험을 볼 때도 종이에 마구마구 써가면서 집중할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기 딱이다. 그래서 이 책상에는 거의 놓여진 물건이 없다.
매일 일상을 함께하는 공간이다보니 깊게 관찰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머무는 환경이 나를 얼마나 표현하고 있는지 느낀다.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분들을 많이 팔로우하는데, 그러다보면 그 분들의 책상사진도 심심치않게 보게 된다. 항상 스치듯 넘어가고 글만 읽고 지나가느라 자세히 들여다본적은 없었는데 오늘은 다른 사람들의 책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눈여겨 봐야겠다. 좋은 아이템들이 있다면 나도 아이디어를 얻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