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연하기 싫어서 초연하게

내가 주관이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는 여러 입장을 고루 탐색하거나 정보를 수집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에는 성실했다. 하지만 최종에 가서 어느 가치를 중시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가치문제는 정보를 많이 모은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주관이 뚜렷한 것은 가치 선택에 대한 확신과 맞닿아 있었다. 충분한 정보 수집을 거쳤다는 전제 아래 의사결정의 순간에서 좋은 판단을 내리는 사람은 자신의 가치관을 뚜렷하게 정립해 온 이들이었다.
나는 내가 조금 더 도전적인 사람, 많은 사람과 교류하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넓은 식견을 가지고 큰 영향력을 행사하길 꿈꿨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몰아넣으며 원하는 가치를 추구하기를 소망했는데, 그럴수록 오히려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소박하고, 일상의 안정감을 중요시하며, 작은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변화에서 오는 즐거움을 추구하고, 더 많은 성취를 위해 끊임없이 목표를 세우고 일을 추진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게 잘 되지 않았다. 스스로를 평가 절하하는 경우도 많았고, 해 봄 직한 일을 지레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소박함이 주는 장점 또한 뚜렷했다. 기대가 크지 않으니 괴로울 일이 줄어들었고, 작은 것에도 기뻐할 수 있었다. 허황된 것을 좇으려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