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필사

100일 글쓰기 챌린지 Day 76

연연하기 싫어서 초연하게

늘 하고 싶은 것보다 합당한 것을 선택해 왔다.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능력은 유능하기 위해 필수적이었다. 공부나 일의 세계에서는 그런 것이 더 중요했다.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실천해야 성과가 나고, 결과를 인정받을 수 있으니까. 감성보다는 이성에 훨씬 더 가치를 두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성을 따르며 생활하니 감정 표현도 적었다. 긍정적인 감정이야 괜찮지만, 부정적인 감정일수록 그것을 표출하면 안 된다고 여겼다. 화가 날 때도 내 기분보다 화를 내도 될 만한 상황인지를 먼저 따져 보았다. 내 감정은 뒷전이었다. 그저 일이 일어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그에 따라 적절하게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효율적인 것과 생산적인 것이 좋았다. 무의미한 잡담으로 허비되는 시간이 아까웠고, 오락이나 놀이는 허송세월같이 느껴졌다. 투자 대비 남는 게 없다는 느낌이 들 때면 잃어버린 기회비용을 생각하곤 했다.
취미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좋아서 하는 것이 취미라고들 하는데, 눈에 보이는 그럴듯한 결과물이 있거나, 경력에 도움이 되는 성과를 창출하거나, 혹은 소소한 수입원이 되기를 기대했다. 취미는 놀이의 연장선으로 여겨야 했는데, 이미 관점부터 놀이가 아니었다. 놀이에는 결과를 바라지 않는 법니다. 결과물이 따르길 기대한는 순간 놀이는 노동으로 전락해 버린다. 즐기려고 시작한 취미 활동도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굉장히 무딘 사람이 되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게 되었다. 뒤늦게 마음의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나의 내면은 말하는 법을 잊어 버렸다. 결국에는 열심히 살아왔어도 정작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언제 행복한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