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나는 면허증이 2개다. 한국 면허와 미국 면허. 대부분 그렇듯 20살에 면허를 땄지만 운전할 일이 거의 없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해서 장롱면허로 묵혀두다가 미국에 오게 되면서 급히 운전 연수를 받았다. 미국 도시 대부분이 그렇듯 차가 없이는 살기가 힘들고, 내가 사는 주는 한국 면허로 교환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새로 면허를 따야 했다. 미국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면허를 따고 귀국하는 한국인으로부터 개인 거래로 중고차를 인도받았다. 그렇게 비록 10년 된 중고차지만 첫 차가 생겼다.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운전에 대한 로망 같은 게 있었다. 차만 있으면 어디든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 것 같았고 취업을 하면 차부터 사는 게 꿈이었다. 친구들한테 내가 차를 사면 대중교통으로 가기 어려워서 그동안 가보지 못한 곳으로 여행을 가자는 얘기도 자주 했었다. 그런데 막상 진짜로 내 차가 생기고 나니 내가 생각보다 운전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운전해서 나가야 하는 거에 굉장한 부담을 느끼고 오래 운전하는 게 싫다. 정기적으로 차를 관리해야 하는 것도, 부수적으로 나가는 유지비도 만만치 않는다는 것도 운전이 싫은데 한몫한다. 첫차에 대한 애정도 없다. 이곳은 도로가 더 넓고 차도 적은데다 배려도 잘해줘서 한국보다 운전하기가 훨씬 쉬운데도 왜인지 운전하는 게 재미가 없다. 뚜벅이 생활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 걸까? 몇 년 전만 해도 베스트 드라이버를 꿈꿨었는데, 이제는 누가 나 대신 운전 좀 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