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쯤이면 한국이어야 하는데...

원래 스케줄대로라면 지금쯤 이미 한국에 도착해 남자친구와 저녁을 먹고 동생 집으로 갔어야 하는데, 나는 여전히 미국 땅을 벗어나지 못하고 공항에 있다. 이 험난한 여정의 시작이 어디부터 잘못된 건지. 어쩐지 새벽 3시에 예약한 택시가 제때 도착하더니 13분 만에 나를 공항으로 날라다 줬을 때 모든 게 순조롭다 싶었다. 심지어 6시 45분 비행기가 지연되지 않고 놀랍게도 제시간에 온보딩했다. 출발까지 스무스하게 하길래 마음 놓고 졸기 시작했다. 밤을 새우고 가느라 비행기만 타면 잘 생각으로 버티고 있었던지라 바로 잠이 들었다. 꾸벅꾸벅 신나게 졸다가 방송 소리에 깼다. 시계를 보니 40분 정도를 잤다. 그런데 비행기가 활주로 앞에 그냥 서 있는 게 아닌가! 이게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한 채로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경유지의 날씨가 갑자기 급격하게 나빠져서 활주로 앞에서 이륙 승인이 나지 않아 대기하고 있었다. 2분이 걸릴지 2시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했다. 환승 시간이 3시간 정도로 여유가 있어서 일단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런데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나도 도무지 뜰 생각이 없었다. 경유지 날씨는 점점 나빠지고 비행기는 결국 연료를 채우러 게이트로 돌아가야 했다. 그 사이에 연결편을 취소하거나 변경한 사람들과 그렇지 못 한 사람들이 뒤섞여 아수라장이 되었고, 결국 승객 전원이 내리게 되었다. 그 비행기는 끝끝내 출발하지 못했다.

나는 국내선 연결편이 아니고 한국행 국제선 연결편이었는데, 어제 애틀랜타에서는 1시간 간격으로 딱 2번 한국행 노선이 있었다. 기내에서 3시간 가까이 대기하다가 내린 시간이 9시 반이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으니 점심쯤 있는 한국행 비행기를 모두 놓쳤고 다음 날에는 애틀란타-인천 노선이 없어 경유지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틀 전에 받은 코로나 검사 결과도 또 다른 걸림돌이 되었다. 검사를 다시 받지 않으면 탑승이 거절될 수도 있어서 새로 검사를 받아야 했다. 게이트와 앱에서 추천해준 옵션대로라면 집에 다시 돌아가 하루를 보내고 내일 다시 공항에 와야 한다는 게 정리가 잘 안되었다. 복잡한 머리로 일단 짐을 되찾으러 나갔다. 비행기는 언제 출발할지 모르고, 그 안에 있는 내 짐을 꺼내려면 오피스로 찾아가서 요청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오피스로 갔더니 비행기가 5분 후 출발 예정이라 꺼낼 수가 없다고 하는 게 아닌가! 애틀랜타로 외로이 떠나버린 짐을 찾아오려면 내가 애틀랜타를 거쳐서 가거나 다시 출발지로 짐을 받아와야 하는데 변경된 스케줄에 따라 선택하라고 했다. 우선 스케줄 변경을 해보고 다시 오겠다고 한 뒤 급한 대로 보이는 델타항공 카운터 아무 곳으로나 뛰어갔다.

체크인 카운터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마도 대부분 안내대로 앱을 통해 새로운 항공편을 찾았거나 취소한 뒤 다른 항공권을 예약한 것 같았다. 한국으로 가는 직행을 찾아야 하는 나만 발을 동동 굴렀을 뿐. 아무튼 무작정 찾아간 체크인 카운터에서 앞뒤 자르고 당장 오늘 출발할 수 있는 비행기가 있냐고 물었다. 경유지는 어디든 상관없으니 한국에만 갈 수 있으면 됐다. 오늘 반드시 출발하는 게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비록 내 짐은 애틀랜타로 가버렸지만 어떻게든 찾아주겠지 하는 심정으로 물었는데 다행히도 저녁에 출발하는 비행기가 있다고 했다. LA를 거쳐 인천으로 가는데, 애틀랜타로 떠났다던 내 짐은 아직 출발하지 못한 비행기 안에 있었고 내부적으로 잘 처리해 무사히 인천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탑승 시간까지 7시간 남짓을 더 기다려야 했지만 왔다 갔다 하는데 시간을 버리느니 그냥 공항에 남아서 기다리기로 했다.

천재지변을 어쩌랴. 모든 게 잘 해결되고 나니 다 받아들여지고 용서가 됐다. 24시간 걸릴 거 48시간 걸려서 집에 가는 거지만, 나를 힘들게 하는 이 모든 상황이 나보고 한국에 가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았지만, 들떴던 마음이 한순간에 식어 의욕도 설렘도 다 사라져버렸지만, 어쨌든, 이런 일도 있는거지 하기로 했다. 의도치 않게 좌석을 업그레이드 받게 돼서 조금 누그러진 것도 사실😁😁